나는 전자를 글, 후자를 글자라 하고 글자는 글자꼴과 글자맵시로 기능한다. 따라서 생각을 시나 소설 따위로 표현하는 건 ‘글짓기’, 생각을 글자의 형태로 표현하는 건 '글자짓기’, 집을 짓는 건 집짓기이다. 그 글자짓기의 덕을 누리지 않는게 도대체 얼마나 있을까마는 그 덕을 한껏 누리는 건 신문, 방송, 인쇄, 출판 따위이고 겨우 한글날 즈음에만 활자문화 운운하며 나홀로 민족언어를 지켜 민족을 지킨 양 요란을 떨고, 가깝게는 나홀로 일제와 독재에 맞서 오늘을 이룬 양 촐싹대지만 스스로들을 거룩하신 오늘의 자리에 있게 한 글자연구에 최소한이나마 갚음을 했다는 건 과문 탓인지 아직껏 듣도 보도 못했다. 기껏 최초의 활자개발, 활자개량 따위를 떠벌여 돈벌이에 보탤 요량으로 들먹일 뿐 아직껏 쓸만한 연구에 터럭만큼이나마 애쓴 바 없다고 감히 단정한다.
또 글자문화에의 기여랍시고 제자랑이나 늘어 놓거나 돈될만한 걸 모아놓으려고 마련한 신문박물관 활자박물관을 들먹이거나 독자를 위한 가로짜기나 알량한 돈 몇푼 쥐어 주고 얻거나 울거낸 활자교체 따위를 들먹일지도 모른다. 재벌급 신문사, 방송국, 출판사, 인쇄소 ... 따위에 해당 부서가 있다면 살펴보라. 어느 기술부서 밑 외진 구석 한켠에서 겨우 겨우 연명하고 있기 십상일게다. 그게 여지껏 떼돈을 벌게 해준 숨은 공에 대한 갚음이라면 배은망덕이다. 광고판의 그림쟁이들의 괘씸은 부끄럽게도 더하다.
중국의 삼국시대 위魏 문제文帝 조비(조조의 맏아들)의 살의를 피하게 한 아우 조식의 ‘칠보시’를 몰라도 제살깎기는 피하련만 나라도 기업도 은공 갚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싸구려 폰트로 팔아 연구비라도 충당할라치면 맨먼저 불법복제에 나서기 일쑤니 장사 젬병이는 열을 들여서 겨우 하나를 건지기가 어렵다. 그 심정이 하도 기막혀서 딱 떨어지는 그 ‘칠보시’를 적어둔다.
煮豆燃豆쉥(자두연두기) 콩대를 태워서 콩을 삶으니
豆在釜中泣(두재부중읍) 가마솥 속에 있는 콩이 우는구나
本是同根生(본시동근생) 본디 같은 뿌리에서 태어났건만
相煎何太急(상전하태급) 어찌하여 이리 급히 삶아대는가
지금부터 근1800 년 전 조비도 이 시를 깨닫고 아우 조식을 살려 주었다. 이제 제살깎기 도적질은 을지문덕의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
神策究天文
妙算窮地理
戰勝功旣高
知足願云止
의 뒷 싯구처럼 ‘전승의 공(?)이 이미 높으니 바라건대 족함을 알거든 그만 함이 어떠하온지...’ 이 시를 받은 수隋 우중문 군은 달아나다 살수대첩에서 근 30만명 중 겨우 3천명 남짓이 살아 돌아갔다고 한다.
가련한 한글을 차라리 없게 하여 주소서
세종대왕 폐하도 1990년대 앞무렵에는 일년에 딱 한 번 그나마 한글날 세종문화회관 전시로 체면치레 대접을 받더니, 요즘은 홍릉 세종대왕기념관 뒷마당의 동네잔치, 아니 서툰 아이들 운동회 수준 이하의 찬밥신세다.
명색이 문화관광부 장관 이름의 한글날 상장이 주어지는 마당이 어린이 미술대회 시상식장만도 못하고 마지못한 듯하던 한글날 즈음 기사조차 뜸해졌으니 만원짜리 돈의 세종임금 영정을 현실대로 처참한 몰골로 고치든지 차라리 지우고 세태가 종하하는 재벌이나 연예인 사진이나 담아야 하지 않겠는가? 화폐 손상이 심하다는데... 그렇게 미국식 싸구려 문화(?)에 넋나간 요즘 사람들이 얼마나 애지중지 아끼겠는가.
과거에는 성씨가 노인지 예스인지 대통령님 아니 나랏님, 이제는 이씨 성을 가진 나랏님, 한글이 한글날 노랫말처럼 민족의 자랑, 나라의 자랑이라면 집 팔고, 몸 버리고, 마음 상하고 끝내는 목숨마저 버리며 지어낸 한글글자들이 딴따라 손짓 발짓도 특허라는 세상에 왜 법이 보호할 수 없는지 살펴 밝혀주심이 어떠하신지...
글자디자인에 포함된 예술성을 감히 법원이 판단하겠다는 건방진 요지로 판결하신 그 판사님 만나 뵙고 얼치기지만 서예로 한글글자를 쓰면 저작권이 있고 세종임금의 마음처럼 모두가 쓰기 편하도록 몸과 마음을 바치고 돈들여 한점 한확을 위해 익힌 역사공부까지 곁들여 디지털 폰트로 지으면 저작권이 없다면 소도 웃을 까닭을 따져 묻고 싶은데 어떠하신지...
글자 아니 한글 아니 더 좁혀 한글활자 덕에 떼돈 버는 신문사, 방송국, 출판사, 인쇄소님들 내 나라 앞날에 아무 보탬 안될 외국 딴따라 따위를 불러들이는데는 협찬도 잘 하시고 생색나는 대학에는 돈도 건물도 기증 잘 하시더이다. 불쌍한 세종임금 잔칫날에 돈 몇푼씩 동냥(?)해서 잔칫상이나마 남 부끄럽지 않게 해주심이 어떠하신지... 그리고 ‘빨간바지’복부인 김여사, 이여사 마냥 골동품 사잴 박물관 지은 걸로 눈가리고 아웅하려 들지 말고 제대로 된 글자문화 또는 시각언어연구소 하나 쯤 만들 생각은 없으신지...
다른 말도 또 소리도 있겠지만 내 배불려 주고 등 따시게 해주느라 생을 기울인 고 이원모, 고 박경서, 고 조정수, 고 최정호, 장봉선옹, 최정순옹, 이남흥옹, 고 김진평 등등의 업적을 후학들도 살피게 할 기념관이나 글자짓기 박물관 하나 쯤 만들 생각은 없으신지... 설마 알량한 고료 몇푼이나 월급 몇푼으로 겨우 허기 메워준 걸로 갚음을 다했다고 생각하는건 아니신지... 유행가 가수에도 앨범판매가 대박이 나면 계약 외 뭉칫돈 선심이 있답디다. 또 점심값 조금 줄이고 저녘 술값 조금 아낀 것만으로도 애비 잃고, 남편 잃고 그리 넉넉치 못하다는 고 김진평씨 유족에는 도움이 될 수 있을텐데 자녀들 장학비나 혼수 쯤 맡으실 생각은 없으신지... 그 공을 기린다는 명분으로 자그마한 공모전이나 상을 하나쯤 제정할 생각은 없으신지...
이 얼마나 푼돈 몇푼으로 명분있고, 생색나고 그야말로 도랑치고 가재잡고, 꿩 먹고 알 먹는 노릇이오이까.
세종임금이 임금노릇 19년 동안 어린백성들을 위해 책을 읽고 또 읽느라 당뇨병에 걸려 눈마저 희미해진 몸으로 중국에 다르고저 한글을 애지었다면 이는 우리는 ‘한울님 자손’이라는 뜻을 담고자 했음이 틀림없다.
한글날... 세종임금 그 뜻깊음에 감사하자는 날... 그 잔치마당의 어지러움은 장사치들의 난장을 간신히 면한 수준이었고 공모전 시상식장의 썰렁함은 난민촌 운동회 시상식장만도 못했다. 그 저편에 있는 세종임금상의 몰골이 통곡으로 간절히 애원하는 듯했다. ‘제발 한글과 한글날을 없애달라’고... 그리고 나도 뜬 눈으로 근 절반을 지샌 지난 이십여년과 어쩌면 이깟 한글 글자짓기 짓거리가 아니었다면 잃지 않았을 내 피붙이들의 주검을 생각하며 속깊이 통곡하며 간절히 애원했다. ‘차라리 한글날을 없게 하여 주십사’고...
[원문 출처]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6&oid=047&aid=0000029154